A 너는 늘 그렇게 내 마음을 짖밟지. 한적한 겨울에, 너는 늘 그렇게. 추운 겨우내를 이기고 피어난 새빨간 동백. 나는 이 꽃을 보면 항상 네가 떠오른다. 어딘가 모르게 굳센 의지로 땅을 버티고 선 네 모습이 마치 하얀 눈이 내려앉은 대지에 홀로 붉게 핀 동백과도 같아서 새하얀 대지 위로 핀 붉은 꽃을 볼때마다 나는 너를 생각한다. 너는 희망 어린 눈동자...
흐린 날이다. 어두컴컴하지만 구름때문에 밝게 보이는 밤 속에서 나는 먹구름낀 하늘을 보며 잔뜩 막힌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바람은 차가웠고 새벽의 냉한 공기가 목구멍을 타고 가슴으로 흘러들어왔다. 답답한 숨이 조금이라도 시원해질법 했건만 게워지지 않은 하늘처럼 답답함은 여전했다. …늘 내 상상 속의 그는 달리고 있다. 잘 차려진 정복을 입고 땀이 뻘뻘 ...
그는 꽤나 웃긴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가령 방금 내게 말한 생이 한 번뿐일 수도 있지 않냐는 물음 같은 것들. 말 그대로 웃겼다. 나만 그의 과거 생들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죄책감에 사로잡혀 그를 갈망한다는 사실이 더 없이 비참하고 씁쓸했다. 그 많은 것들을 공유해왔는데 왜 너만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아니, 이건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하니 내가 이해...
‘너는 이 물질세계 그 자체야. 네가 기억하면 모든 것이 끝나.’ 아아, 갑자기 그때가 떠오르네. 네가 그 말을 했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어. 계속해서 떠올랐지. 너의 뒤이은 말에 내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너는 영원토록 모르겠지. ‘너는 분명 우리와 비슷해. 그런데 달라. 우리는 무의식 차원에서 진실을 잊고 살지만 너는 잠재의식 차원에...
“너는 만약 한번의 전생을 기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떤 걸 기억할 거야?” 늦은 오후 시간. 늦은 일요일의 오후는 무언가 아쉬우면서도 미묘한 감각이 든다. 아쉬운 건지 싫은 건지 모를 감각 사이로 들려온 물음은 또 이상한 감각이 가슴에 스며들게 했다. 두꺼운 지렁이가 심장 속을 헤엄치는 느낌에 나는 가슴부근을 조금 긁으며 물었다. “전생?” “응.”...
“너 제비꽃의 꽃말이 뭔줄 알아?” “응? 아니?” “순진한 사랑.” “…?” “지금 네가 딱 그래.” 이상했다. 바위 틈에서 나온 보라빛에 쭈구려 앉아 사진을 찍는 내게 갑작스레 던진다는 말이 순진한 사랑이라니. 뭐, 어쩌라는 거지? “그걸 왜 지금 얘기 해?” “너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 “…됐다. 알아서 해.” 응? 뭐야. 뭔데? 왜 말을 ...
연수. “또 다시 천사로 살아갈 순 없어.”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을 퍼부어줄 순 있지만 그의 허락없이는 온전하게 삶 속에서 그를 도와줄 수 없다. 나는 도저히 누군가를 수호하는 존재로서의 삶을 지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택한 인간으로서의 삶이었다. 물질세계에서의 삶을 택한 한 존재에게 관여하는 천사의 수는 인간의 생각보다 훨씬 많다. 우리는 그들 모르게 그...
혜나. 차가운 빗소리가 잠결에 스며든 의식 사이로 조금씩 조금씩 끼어들어온다. 어느새엔가 스며들어온 소리. 나는 자각되지 않은 의식사이로 여러 기억들이 조각처럼 인식되지 않는 것을 느끼며 여기가 어디인지 자각하려 애쓴다. 곧이어 잠에 든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의식이 살아난다. AM 4:02 어이없는 시간에 헛웃음이 조금 나온다. 아아 빨...
혜나. 나는 사막에서 춤을 출 거야. 그가 내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뭐? 사막? 내가 아는 모래로 가득한 사막? 어이없어하며 묻는 내게 그는 반짝이는 눈으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내가 과거를 떠올릴 때면 유독 선명하게 회상되는 장면 중 하나다. 때마침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는 이집트전에 다녀온 참이었기에 유달리 느껴지는 선명한 동시성. 이게 우연은 아닐...
연수. 내가 만약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너에게 조금이라도 더 말을 걸었을거야.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너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냐고 물어볼 거야. 반복되는 일상이 너에게는 힘겹지 않냐고. 나는 힘겹다고. 그렇게 생각을 나누면서 너에 대해 알아갈 거야. 그날은… 벚꽃이 지던 날이었어. 거센 비에 분홍빛 세상이 씻...
사마엘의 희생으로 우리엘의 영혼에 새겨진 엘과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대천사가 된 엘은 우리엘의 기억을 되살리길 원치 않았다. 그래서 엘은 환생한 우리엘을 그저 지켜만 볼 뿐이다. 둘 중 한명이 용기를 내어 상대방의 사라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 때에 그들은 진실로 서로를 마주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떠한 그리움에 사로잡히고...
환상이 있었다. 그녀를 내 손으로 죽인다면, 나의 그리움을 내 손으로 직접 사라지게 만든다면 이 고통의 원인이 사라지지는 않을지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그 끝은 언제나 고통으로 끝맺어졌다. 그녀가 나를 잊는다면 그것보다 더한 고통은 없을 것이다. 그래, 그게 문제야. 우리의 상상력엔 언제나 희망이 있고, 신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지. 그래서 우리의 고통도 창...
아름다운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글을 읽으면 새로운 세상을 직접 경험하는 것이 좋아서 경험하고 싶은 세상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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